천민출신 용장 한명련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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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 명나라에서 이순신과 함께 조선의 명장으로 불린 천민출신 명장이 바로 한명련입니다. 여기에서는 한명련의 천민으로서 높은 직위에 올랐음에도 결국 비극적 결말을 겪어야 했던한명련의 생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한명련은 천민 출신으로 졸병에서 시작하였으나, 수많은 전공을 세워 선조의 신임을 받아 천민임에도 정삼품 별장으로 임명되었으며, 도원수 권율의 휘하에서 김덕령과 함께 조선의 맹장으로서 이름을 떨쳤습니다.
한명련은 권율의 휘하에서 나와 경상 우병사 김흥서의 밑에서 큰 전공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리하여 명나라 장군이 이순신과 더불어 조선의 4대 명장의 하나로 한명련을 들기도 하였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선조의 총애를 받은 한명련은 종이품 오위장이 되었으나 북인 세력의 견제를 당하여 자진해서 변방으로 떠났습니다.
선조 사후 왕이된 광해군은 한명련을 다시 불러 들여 길주 목사를 거쳐, 순변사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면서 한명련은 이괄의 난에 가담했다는 역모 혐의로 체포되어 압송되는 과정에서 이괄에 의해 구출됩니다.
인조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한명련은 1624년 이괄의 선봉에서 활약하지만 정부군에 패하여 이괄과 퇴각하던 중 부하의 배신으로 사망하게됩니다.
한명련의 아들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조선을 버리고 후금에 투항하여 훗날 청나라 장수가 되어 조선 침략의 선봉에 서게됩니다.
한명련이 죽고난 후 병자호란이 발생했을 때 인조가 적진을 휘저을 용장이 없음을 한탄하자 신하 이경증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한명련 같은 자가 있다면 적진을 돌파하기 어렵지 않겠으나 지금은 그 일을 감당할 사람을 단 한 사람도 들어 보지 못하였습니다."
한명련은 임진왜란 당시 뛰어난 용장이었으나, 천민이라는 신분적 한계와 정치세력들의 견제로 인해 반역자로 몰려 결국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